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데르 6세 (문단 편집) === 말년 === 의외로 현재의 [[아메리카]] 대륙 지도를 그리는데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항로를 개척한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되자, 교황으로서 아메리카 대륙에 세로로 선을 긋고, 신대륙을 양분한 뒤 두 나라가 알아서 가지라고 중재한 것이다. 교황의 중재에 따라 1494년 6월 4일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las)이 체결되어, 사실상 [[남미]] 지도[* [[브라질]] + 나머지 [[스페인어]]권 국가들]는 이때 다 그려졌다. 또한 이를 계기로 [[남미]]에 관심을 가져 수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순례자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그 헌금으로 [[교황청]]을 부자로 만드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교황청 자체가 부유해지지는 않았다. 순례자들의 헌금은 대부분 체사레 보르자에게 넘겨져 군사비로 쓰였다. 또한 순례자들을 불러들인 것은 [[희년]]이라 하여 50년마다 한 번씩 있는 행사로, 딱히 알렉산데르 6세가 "나 돈 없음. 그러니 로마로 순례 오셈." 한 건 아니다.] 1503년 8월 18일에 72세의 나이로 사망하는데, 체사레 보르자와 동시에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열병에 걸린 뒤 1주일도 안 되어 죽게 된다.[* 연회에서 보르자 가문 비전의 독약 칸타렐라로 다른 사람을 독살하려 했는데, 잔이 뒤바뀌는 바람에 부자가 독을 마셨다는 [[야사(역사)|야사]]가 있지만 신빙성은 낮다. 당장에 알렉산데르 6세의 치세에 교황령에 파견되어 있었던 페라라 대사가 본국에 '''"로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쁜 공기' 때문에 병에 걸렸기에, 교황과 발렌티노 공작이 병에 걸린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라는 보고서를 써 보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말라리아]]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고 생각했다. [[말라리아]]라는 병명도 [[라틴어]]로 '''나쁜 공기'''라는 뜻이다.] 재위 11년 만이었다. 생전의 권세가 무색하게도 사후에 매우 처참한 꼴을 당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시스티나 경당]]에 잠시 안치되었던 알렉산데르 6세의 [[시체]]가 급속히 [[부패]]하여 부풀어 올라버린 것이다. 특히 혓바닥이 심하게 부어올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곧 심한 악취를 풍겼다. 그 바람에 관이 비좁아져서 시신을 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장례를 맡은 [[바티칸]] 관료들은 시신을 [[카페트]]로 둘둘 만 뒤에 관 속에 억지로 쑤셔넣을 수 밖에 없었다. [[파일:external/seudexativa.org/7_Papa5.jpg]] 유해는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인 몬세라토 델리 스파뇰리 성당(Santa Maria in Monserrato degli Spagnoli)으로 옮겨져 삼촌인 [[갈리스토 3세]] 옆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